▲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김형진 기자

사문화돼 있던 결핵환자에 대한 ‘입원명령’이 부활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슈퍼결핵(광범위내성결핵, XDR-TB)’ 환자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런 환자들이 다제내성결핵균을 퍼뜨리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운이 나쁘면 바로 다제내성결핵환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결핵퇴치정책의 일대 변화를 몰고 온 강제입원명령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 4월로 1년이 됐다. 지난 2011년 4월 1일, 정부는 전염력이 강한 다제내성결핵(광범위내성 포함) 환자에 대한 입원명령을 전격 단행했다. 결핵발생률 및 사망률 OECD 국가 1위라는 불명예를 씻기 위한 조치였다.

‘입원명령 결핵환자 지원사업’과 함께 진행된 강제입원명령제도는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에 대한 민간의료기관들의 반발로 당초 일정보다 두 달 늦은 6월 1일에야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사업 시행 초기 민간의료기관의 격리병실이 일순간 포화되는 등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결핵 퇴치를 위해서는 전염성이 큰 다제내성결핵이나 슈퍼결핵(광범위내성결핵)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는 데 의료계나 학계 모두 공감하고 있던 터라 그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입원명령을 받은 환자가 이를 거부해도 이를 강제한 경우가 단 한 건도 없는 등 제도 시행 1년 만에 허울뿐인,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조짐이 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입원명령 대상 4천명 중 320명 입원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입원명령을 받고 입원한 결핵 환자는 320여명이다. 여기에는 다제내성결핵과 슈퍼결핵 환자는 물론 전염성이 있는 도말 양성 결핵환자도 포함됐다.

정부는 지난해 강제입원명령제도를 시행하면서 전체 결핵 환자 8만명 중 다제내성결핵과 슈퍼결핵 환자를 4,000여명으로 추정했다. 즉 입원명령 대상자로 격리해야 하는 결핵환자가 4,000명이라는 것이다. 결국 입원명령 대상 중 채 10분의 1도 격리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는 동안 결핵 환자는 더 늘었다. 지난해에 신고된 결핵 신환자는 3만9,557명(10만명당 80.7명)으로 전년 대비 8.6% 증가했다. 사망률은 2009년 10만명당 4.6명(2,292명)에서 2010년 10만명당 4.7명(2,365명)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및 사망률 1위다.

질병관리본부 측은 지원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면 입원명령을 받고 입원하는 환자가 늘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제내성결핵환자나 전염성이 있는 결핵환자가 입원명령을 받고 입원하면 입원비 본인부담금 전액은 물론 투약 및 조제료, 선택진료비, 식비, 상급병실차액료, 간병비 등 비급여 부분도 일부 지원받을 수 있다. 또 2012년도 가구별 최저생계비 소득수준의 300% 미만(환자 가구), 500% 미만(환자 부양의무자 가구)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면 부양가족 생계비도 지원받는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조은희 연구관은 “6만원인 비급여 약제는 물론 상급병실 차액까지 지원해주니까 지난해 6개월 동안 1,500만원을 지원받은 환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입원명령 거부하는 환자들

입원명령 결핵환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사업에도 불구하고 입원 자체를 거부하는 환자들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면 결핵환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음지로 숨는 경우다. 치료방법이 없어서 평생 입원해 있어야 하는 만성배균자들은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닌 국립목포병원이나 국립마산병원, 서울시립서북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것에도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강제입원에 대한 이같은 거부감을 알기에 정부도 법까지 개정해서 입원명령을 받은 환자가 이를 거절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강제했다. 입원명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지만 실전에서는 사문화된 조항처럼 여겨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A대학병원 호흡기내과 B교수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 교수는 몇 년 동안 치료를 받았는데도 전염성이 사라지지 않는 다제내성결핵환자가 외래진료를 받으러 왔기에 관할 보건소에서 입원명령을 받아 결핵전문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더불어 객담검사도 실시했는데 얼마 후 배양된 결핵균을 국립결핵연구원에 약제내성검사를 의뢰한 결과, 연구원에서 검사하는 15가지 결핵약 모두 내성을 보이는 ‘전(全)약제내성결핵(TDR-TB)’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같은 진단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해당 환자의 관할 보건소에 문의해보니 이 환자는 입원을 거부한 채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때가 벌써 자신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지 3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었지만 관할 보건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이 문제로 논란이 일자 질병관리본부는 해당 보건소에 입원명령을 내려 환자를 격리시키라는 공문을 보내고, 그래도 입원명령이 이뤄지지 않으면 보건소에 행정 조치를 내리겠다며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활보하는 슈퍼결핵환자 보고만 있는 정부

입원명령을 받고도 ‘버티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해서라도 강제입원 시킨다는 게 제도 도입의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입원명령을 거부했다고 벌금형에 처해진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국립목포병원 김대연 원장은 “입원명령을 어겼을 때 5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지만 지금까지 집행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강제입원명령만 내려놓고 그에 대한 후속 조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강제입원명령제도의 가장 큰 목적이 결핵 전염 예방인데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또 다른 결핵전문의는 “강제입원명령제도를 위반한 환자들은 치료감호소 같은 곳에서 치료하는 게 낫지 않나 싶다”며 “다제내성결핵 같은 강력한 결핵균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서 그렇지 안다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질병관리본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이달 중 대만을 방문하는 것도 결핵퇴치정책을 둘러보기 위함이다. 특히 대만의 경우 다제내성결핵환자가 입원을 거부할 경우 경찰을 대동해서 강제 입원시키고 있다고 한다.

다제내성결핵환자, 도대체 몇 명인가

가장 큰 문제는 국내에 다제내성결핵이나 슈퍼결핵 환자, 만성배균자가 얼마나 있는지 그 정확한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현재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하고 있는 다제내성결핵환자 현황은 지난 2008년 민간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결핵환자 진료비를 청구한 자료의 의무기록을 조사한 것이다. 2008년 기준 결핵환자 5만3,579명 중 4.6%인 2,472명이 다제내성결핵환자였으며 이 가운데 슈퍼결핵환자가 700여명, 만성배균자가 100~200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은희 연구관은 “최소 2,400여명이라는 것이다. 그때보다 시간이 지났으니까 다제내성결핵환자는 최대 4,000명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수치는 2008년 진료비 청구 자료를 기준으로 한 ‘추정치’일 뿐, 다제내성결핵환자 현황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질병관리본부는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약제내성감시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조 연구관은 “다제내성결핵 여부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게 약제감수성검사(drug sensitivity test)”라며 “법을 개정해서 약제감수성검사 기관들이 내성결핵에 대한 신고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제내성결핵환자들이 모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문제다. 이들을 전부 수용할 만한 인프라가 없기 때문. 강제입원명령제도가 시행된 지 5개월여 뒤인 지난해 9월에도 격리병상이 부족해서 입원명령을 받고도 최대 2주나 기다렸다가 입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입원명령 이전에 이미 입원해 있던 환자를 제외하면 격리병상이 없어 입원하지 못한 환자 비율은 22%에 달했다.

정부는 지난해 강제입원명령제도를 시행한 것에 이어 올해는 결핵환자의 결핵약 복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한국형 직접복약확인(DOT)’ 시범사업을 제주도 등에서 실시한다. 하지만 정책만 쏟아낸다고 해서 결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이미 OECD 1위라는 타이틀을 통해 증명됐다. 이제는 강력한 실천 의지를 보여줄 때다.